국보 94호

고려청자 국보94호
2005년 용산박물관 개관이래 “고려왕실의 도자기”(290여점) 주제로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도자기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국보94호 “청자참외모양 병”, 황통6년이라고 명문이 있는 인종시책, (개성에 있는 인종장릉에서 출토됨.) 국보61호 “청자어룡모양주자(개성에서 출토됨.), 고려왕실도자기(왕릉이나 왕릉 급 무덤에서 출토)를 처음 한자리에 전시하게 되었다.


선은/ 가냘픈 푸른 선은

아리따웁게 구을러/ 보살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여/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박종화의 ‘청자 부’ 중에서


고려청자는 통일신라 (676-918)말, 9세기 중엽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고려(918-1392)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청자를 말한다.초기의 청자는 한국에 수입된 중국청자의 영향을 받아 형태와 문양 장식등에 있어 중국의 자기양식을 따랐으나 11세기부터 고려청자고유의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고려청자는 비색(翡色), 인물과 동식물을 본뜬 각종형태의 문양을 나타낸 상감기법, 이 세 가지로 유명하다.고려청자에는 불교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있다.

청자의 특징은 유색이 반투명에 가깝고 광택이 은은하여 문양이 없다는 점이다.고려 말의 대표적인 왕실청자로는 공민왕의 비 노국대장공주의 陵號인 “正陵”이 상감된 “청자 넝쿨무늬 대접” (1365-1374)이 있다.


무신 정권 기에 최씨 정권의 후반부에 권력을 장악한 최항(崔沆)(1257년 졸)의 무덤에서 나온 청자연꽃무늬 조롱박 무양주자“는 왕의 세력을 능가한 당대 최고 권력자가 소유했던 청자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된다.


시책(諡冊)은 왕과 왕비가 죽은 뒤 시호(諡號)를 올릴 때 여러 편의 玉 (方解石)에 시호와 생전의 덕행을 새겨 책으로 만든 것이다.
청자 참외모양 병(국보94호)은 12세기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품이다.

11세기후반 중국 경덕진 요(窯)의 청백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병은 주름치마를 닮은 높은 굽, 참외모양의 유려한 몸체, 부드러운 곡선의 긴 목, 최대한 절제된 문양 장식등 전체적인 비례와 조화가 뛰어나다.


도자기제조기틀 마련한 통일신라시대

도자기는 신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양질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통일신라시대에는 그릇을 만드는 바탕이 되는 흙, 즉 태토(胎土)를 기존과 달리 엄선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릇조직이 엉성하지 않고 훨씬 치밀해질 수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유약을 제조하고 사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유약은 도자기가 아름다운 색감을 가지려면 필수적인 재료이다. 또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 온도를 매우 높은 상태로 지속시킬 수 있는 기술도 터득했다. 가마가 높은 온도로 유지 되어야 가마 속 그릇과 유약성분이 충분히 화학작용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색이나 형태가 아직 조악하긴 하지만 고려시대의 빼어난 청자를 예감할 수 있게 해주는 녹 청자가 만들어 졌다.


하지만 녹 청자색은 고려청자에 비해 탁하며 조잡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녹 청자는 태토에 회유와 초록색청자유를 발라 구워낸 그릇인데, 태토를 엄선한 기술이 아직 부족해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고, 이 불순물들이 가마 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질 때 여러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공기구멍도 만들어내 그릇색이 균일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나무재가 주원료인 유약역시 회유에는 불순물이 많았으며 녹유에는 철성분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청자색이 탁하게 됐다.


고려청자, 태토와 유약으로 신비의 빛 얻다.
통일신라 기술이 고려로 전승되면서 10세기에 고려청자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청자의 아름다운 비색이 나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태토다루는 기술의 정교함이다. 이전에도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조심스럽게 선택하기는 했지만 고려시대에 들어서 태토 내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미세한 입자들 크기를 고르게 하며 다양한 원료를 혼합하는 작업이 발달하게 됐다. 흙을 다루는 공정 중 가장 중요한 변화가 흙의 숙성이었다. 흙을 마치 술 익히듯 7~8일간 숙성시키면 흙속에 있는 유기질들이 분해돼 점토 알갱이들이 더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숙성과정을 거친 흙을 사용하면 그릇 빚기가 더 수월해져 아름다운 그릇을 빚어낼 수 있게 된다.
태토와 더불어 유약의 발견이 청자의 비색을 가능하게 됐다.
고려시대에는 기존의 나무 재를 쓰던 유약을 장석을 쓰는 유약으로 대체했다.
고려청자의 비색을 태토와 유약에 포함된 산화철이 빚어내는 색이다.

태토에 포함된 2%정도 산화철에 역시 2%정도 산화철을 포함한 유약을 발라 뜨거운 가마에 두면 그릇의 철 성분은 산화와 환원과정을 반복하며 고온에 이르고, 환원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태에서 비로소 아름다운 비색이 만들어진다.

대체산화철이 어떻게 아름다운 비색을 내는지 알기위해서는 산화와 환원과정을 이해 해야 한다. 태토와 유약에는 산소 세개와 철 두개가 결합해 이온 값이 +3인 산화철과, 산소하나와 철하나가 결합해 이온 값이 +2인 산화철이 모두 존재한다. 그런데 이 +3이 철 이온이 많은지, +2가 철 이온이 많은지에 따라서 도자기색이 달라진다. +2가 철 이온이 많으면 푸른색의 녹색이 나오고, +3이 철 이온이 많으면 노란색의 녹색이 나온다. 앞에 것을 환원염 뒤에 것을 산화염이라고 하는데, 고려청자는 바로 환원염 때문에 푸른색이 도는 녹색인 비색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산화염번조 : 가마 안에 장작을 적당량 넣어 산소가 부족하지 않게 번조하는 방법이다.

이때는 유약속의 금속산화물이 가마 안의 산소를 받아들이는 산화작용이 일어난다.

환원염번조 : 번조할 때 가마에 투입하는 장작을 급격히 늘려 산소가 필요량보다 부족하게하면 장작이 탈 때 발생하는 탄소가 유약속의 산소를 빼앗게 되는데 이 방법을 환원염번조라 한다.

번조 : 구워서 만들어 냄.

상감청자(象嵌靑瓷) : 장식무늬를 상감으로 세공하여 만든 청자.

상감(象嵌) : 금속, 도자기, 목재 등의 표면에 무늬를 파고 그 속에 금, 은 등을 넣어 채우는 기술 또는 그 작품.


출처: 사람과 사람사이